BASEBALLPARK

'코피' 사건 비판에 대한 재비판으로서 다음과 같은 반응이 있음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1) 왜 남자가 비키니에 코피 터뜨리는 것만 따지고, 여자가 남자 벗은 몸을 보고 '초콜렛' 운운하는 것은 문제삼지 않느냐. 2) 무려 공중파 방송 프로그램에도 옷을 반쯤 벗다 만 아이돌들이 숱하게 나오는데 애초부터 'B급방송'을 표방한 나꼼수에 딴지를 거느냐. 나꼼수에 성희롱 운운하는 소위 진보매체만 봐도 홈페이지에 조루가 어떻고, 오르가즘이 어떻고 요란한 광고로 범벅인데 이거야말로 코미디가 아니냐. 

사실 새삼스러운 반응은 아닙니다. 남성들의 성억압적 행태가 이슈로 부상하면, '여자들도 이렇고 저런 경우가 있는데 왜 남자들만 문제삼느냐'라는 반응은 이전에도 흔하게 제기되었던 재반박의 형태입니다. 여기에 원론적으로 답하자면 "페미니즘은 양성 모두에 대한 차별의 해소를 지향한다"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남성에 대한 억압은 부정한다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오로지 차별은 여성에게만 부과된다라고 주장하는 페미니스트는 애초에 제대로 된 페미니스트가 아닐 것입니다. 제가 극히 제한적인 빈도로나마 접했던 페미니스트의 주의주장 가운데 그와 같은 역차별적 내용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물론 원론적인 수준에서 진짜 뜻은 그런게 아니다라고 하여 문제가 없어지는 건 아닐 것입니다. 다수 남성이 실제로 역차별을 체감한다면 거기에는 한국 페미니즘 운동의 책임도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이론적으로도, 실제적으로도 페미니즘 관련 쥐뿔 아는 것 없는 주제에 이런 말 하는 것이 상당히 부담스럽고 무책임하게 느껴지고 미안하기도 합니다만...) 

다만 여기에 제 나름대로 몇 가지 옹호(?)의 논리를 펼치자면, 억압의 정도 차이가 상당히 비대칭적이라는 것. 똑같이 억압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여성이 받는 그것과 남성이 받는 그것은 차이가 있다는 것. (이는 통계 수치로 적나라하게 드러나죠.)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 다 그렇듯이 페미니즘 운동 역시 모든 사안에 있어서 기계적으로 동일한 비율로 역량을 배분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번 사안처럼 남성과 여성의 '몸'이 결부된 문제라면 애초에 각각의 몸이 지니는 사회적인 의미 또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단적인 예로, 여성의 알몸은 철저한 약자의 입장에서 최후의 저항 수단으로 쓰여 왔고 쓰이고 있으나, 남성의 알몸은 종종 약자에 대한 공격 도구로 쓰여 왔다는 사실입니다. 웃통 벗고 들이대는 철거 용역들의 모습을 쉽게 떠올려 볼 수 있죠. 물론 이런 대비를 들어서, 남성의 몸은 이성 혹은 동성에 의해 대상화되어도 아무 문제 없다는 이야기를 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그게 아니란 건 앞서도 이야기한 바 있죠. 그저 남성과 여성을 1대1로 기계적으로 비교하기 이전에 이러이러한 차이가 있다는 것 정도는 전제로 하자는 이야기입니다.

유이의 꿀벅지가 비판의 대상이 되자 남자 아이돌들에 대한 '초콜렛 복근'이 반대급부로 나왔는데, 저는 둘 다 문제라고 생각하고 실제 페미니스트들도 그렇게 생각할테지만, 이 둘을 비교하기 앞서 양성의 몸이 가지는 의미의 차이라든가, 이용되는 방식의 차이를 감안한다면 초콜렛 복근이 문제되기 이전에 꿀벅지 논란이 먼저 튀어 나오고, 꿀벅지 논란이 튀어나오자 어쩌면 '딴지걸기'식으로 초콜렛 복근이 나오는 그런 문제인식의 비대칭성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지 않나하는 생각입니다.

꿀벅지와 초콜렛 복근 이야기가 나왔으니 자연스럽게 2)의 이야기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 공중파 TV 프로그램의 외설성은 문제 삼지 않으면서 나꼼수 코피 논란만 물고 늘어지냐는 이야기가 제법 사회적으로 이름 알려진 사람들의 글에서도 보이는데요, 저는 이러한 논변이 상당히 비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방송에 만연한 성 상품화 문제에 대한 비판은 수도 없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심지어는 기상캐스터의 복장에 대해서도 말이 나왔던 것이 한국입니다. (물론 그에 대해서는 또 다른 형태의 논란이 있겠습니다만 논외로 두기로 하죠) 그러한 비판들을 정녕 보지 못한 것인지, 보고도 못 본척 하는 것인지, 아예 자기 편한 것만 기억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나꼼수 '코피' 논란을 비판하려면 그 이전까지 허다하게 제기되어왔던 과거의 모든 비판을 다시 처음부터 끄집어내야 하는 것일까요?

또 하나, 성적 상품화와 성적 대상화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 특히 여성의 성은 필연적으로 상품화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혹자는 어차피 그런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으니 성 상품화는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성적 대상화는 아니다라고 하지만 여기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지금 한국사회를 규정하고 있는 자본주의가 지금과 전혀 다른 어떤 형태로 변화하지 않는 한 성적 상품화는 참으로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소위 진보 매체의 인터넷 홈페이지가 요란한 성 광고로 뒤덮여 있다는 것처럼 말입니다. 일종의 구조적 한계이지요. 공중파의 외설성을 이야기하면서 '코피'를 문제삼지 말라는 것은 지금으로선 그저 요원해 보이는 거대한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아무런 비판도 하지 말라는 것처럼 들립니다. 불가능한 전제를 내걸고 있다는 것이지요. 성적 상품화가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코피'를 계기로 하여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환기하자고 하는 것이 사리에 맞는 사고전개라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꿀벅지', '초콜렛 복근'이나 '코피'에 이르기까지 모두 하등의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께는 장황하게 서술한 본문의 내용이 애초에 논의의 대상이 되지 못하겠지만, 굳이 그 문제를 여기서 다시 이야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 부분은 지난 며칠간 반복적으로 논쟁이 되어 왔고 서로의 생각을 좁히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여러 차례 확인한 바입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도록 하겠습니다.

ps1. 글을 쓰면서 생각이 든 것인데 언론 매체의 요란한 광고를 구분 없이 도매금으로 넘겨서 비판하는 것은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발기부전제라든가 성인용품 광고까지 성 상품화의 범주에 묶는 것은 일종의 '성적 엄숙주의'라는 생각이 들고요, 저는 그러한 경향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ps2.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아래 papercup 님의 글이라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비키니' 시위 그만하면 되었다, 1주일이면 충분하지 않았느냐고 하시지만 어떠한 문제를 비판하는 데 있어 합당한 제한기간을 규정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1주일이라고 하심은 papercup님의 문제의식이 그 정도(비판의 의도가 아닙니다)라는 것을 의미할 뿐이지요. 다른 사람들에게도 1주일 만큼의 문제의식을 가지라고 할 권리는 없습니다. 남들이 papercup님께 내가 비판하는 것만큼 당신도 비판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당장 papercup님만 해도 어제 오늘 반복적으로 같은 문제에 관한 글을 쓰고 계시지만, 글 몇 개까지 쓰셨으니 이제 그만 두시라 말하는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