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1. 노출 그 자체를 문제 삼는 게 아니다.

비키니 논란을 두고 '한국사회가 성 문제에 관해서 얼마나 폐쇄적인 사회인지 절감한다' 라거나 '성관념 보수적인 분들이 주로 문제 삼는데 참 답답하다'라거나 '노출도 표현의 한 방법이 아니냐? 왜 그렇게 삐딱하게 보느냐' 등등의 비판이 있는데 사실 이건 맥락이 어긋난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슬럿워크'의 예를 생각해보면 꽤나 분명하게 알 수 있죠. 

*슬럿워크 : 지난 4월3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캐나다 여성들이 "성 폭력의 희생을 당하지 않으려면 매춘부처럼 보이는 난잡한 옷차림을 해선 안 된다"는 토론토 경찰의 발언에 항의, 매춘부 같은 도발적 차림으로 시내 행진을 하는 '슬럿워크' 행진을 시작하고 있다.

비키니 시위를 비판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슬럿워크를 지지하거나 혹은 인정하거나 혹 일부는 직접 동참하기까지 했습니다. 말하고자 하는 바는 여성이 자신의 신체를 의사 표현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그 자체를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그 표현이 어떠한 메커니즘으로 이뤄지는 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겁니다. 최초에 한 여성이 자신의 비키니 사진을 이용해서 정봉주 석방을 요구한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봉주 석방과 비키니 차림이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지 알 수 없고, 비키니를 동원하는 게 자기 의사 표현에 얼마나 득이 되는 지도 알 수 없으나 본인이 그렇게 하고 싶어서 한다는 데야 뭐라 할 말이 없죠.) 그러나 그 이후 나꼼수나 정봉주 석방 요구에 동참하고 있는 나꼼수 팬들의 반응을 보면 그 여성의 몸이 남성에 의해 대상화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바로 거기서부터 문제제기가 시작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기서도 이견이 나올 수 있겠죠. '성욕감퇴제 발언은 정봉주를 놀리기 위한 일종의 농담인데 오해하는 거다'라는 식의. 저 개인적으로는 성욕감퇴제를 언급하고 곧이어 '안심하고 수영복 사진 보내주시라'는 발언을 그저 농담으로 웃어 넘기는 건 지나치게 관대하고 편의적인 해석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뭐 어쨌든 그건 넘어가죠. 하지만 주진우 기자가 직접 작성하고 직접 트윗에 올린 '코피' 운운하는 그 문건마저도 그저 농담의 범주로 넘길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코피가 어떤 의미인지는 다들 아시는 바이겠고요.

2. 사과를 해야하는 일인가?

김어준에게 비난의 화살이 집중되고 있지만 제가 간접적으로 보고 들은 바로는(나꼼수는 안 듣고 있으니) 김어준이 특별히 잘못한 건 없다고 봅니다. 제가 문제라고 느낀 건 1. 주진우 2. 김용민 그리고 3으로 비키니 사진에 대한 다수 남성들의 반응입니다. 주진우는 확실히 잘못을 했고, 김용민은 제가 생각하기에는 부적절한 발언을 했으나 농담으로 여기는 사람들의 반응은 이해는 할 수 있는 수준. 그리고 다수 남성들의 반응을 보면서 본말이 전도되어도 참으로 전도됐다고 생각했지만(바로 여기서 비키니 시위의 '효용성'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겠죠..) 이들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겠죠. 개인적으로는 모두의 성찰이 필요한 부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여튼 주진우나 김용민 등등의 잘못을 대표하여 나꼼수가 사과를 해야 한다면 누구에게 사과를 해야하는 거냐라는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도 종종 나오는 반응이 '아니 사진 올린 당사자가 괜찮다는데 왜 제3자가 난리냐'라는 건데 과연 이것이 사리에 맞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 사진이 지금과 같은 공적 의제로 올라선 이상 '당사자'를 그 사진 올린 여성 개인으로 한정지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사진이 소비되는 모습을 보면서 다른 많은 여성이 불쾌감을 느꼈다면 그들 또한 지금 논란의 당사자가 아닐까요?

그리고 김어준이 이런 논리를 펼친 것 같은데 '나꼼수와 그 청취자 사이에는 이미 익스큐즈가 된 부분이니 문제 없다'라는 거. 글쎄요, 일단 '나꼼수청취자'라는 집단을 딱 떨어지게 구획화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고, 유동적인 그 집단 내부에서 나꼼수 팀의 태도를 전부 익스큐즈했는 지도 의문이고,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나꼼수와 나꼼수 청취자들이 무슨 진공 상태의 공간에서 그들만 떨어져 살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거죠. 천만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나꼼수를 듣는 데다가 언론의 주요 취재 대상이 된 지 오래인지라 나꼼수 팀의 언행은 나꼼수를 듣지 않는 사람에게도 광범위하게 노출되지 않습니까. 그리고 나꼼수 청취자들은 크든 작든 나꼼수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나꼼수 비청취자들은 그런 나꼼수 비청취자들과 더불어 살 수밖에 없죠. '우리끼리는 이미 오래전에 이해가 끝난 사안이다. 싫으면 듣지 마라'라고 무 자르듯 자를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3. 빨리 수습하고 지나갔으면 좋겠다.

'지금 나꼼수가 이런 소모적인 논란으로 진 뺄 때가 아니다' 라거나 '한나라당, 조중동이 꼬투리 잡고 물고 늘어지기 전에 빨리 수습하고 지나가자'라는 반응을 종종 봅니다만 그럴 때마다 '그럼 진짜 중요한 일이 도대체 뭔데?'라는 의문이 듭니다. 이런 반응을 보이는 분들이 내놓는 답안은 이런 것이겠죠. '아직도 무궁무진할 가카의 온갖 부조리를 더욱 가열차게 파헤친다'라거나 '다가올 총선과 대선의 승리를 위해 저쪽을 공격하는데 집중한다'라거나 뭐 이런 식으로 가다보면 그런 분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정권 교체를 실현하여 지금처럼 지랄 같은 세상 좀 바꾸고 좀 더 살만한 세상을 만들자!'라는 그랜드플랜이 나오지 않을까 추측해 봅니다. '정권 교체야말로 지금 한국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당면한 최고최대의 목표'라는 인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는 점에서 '반MB 야권단일화'의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정권 교체. 중요하죠. 저도 한나라당의 재집권 바라지 않고, 어찌됐든 야권이 총선도 이기고 대선에서도 이겼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정권 교체 그 자체는 수단일 뿐 목표가 아니지 않습니까? 정권 교체를 바라는 많은 분들이 정권 교체 그 이후의 한국사회에 바라는 것이 있는 것처럼 나꼼수 비키니 문제로 이런 저런 비판 하는 사람들도 한국 사회에 자기가 바라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바라는 것을 부차적인 것으로, 소모적인 것으로 차치할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가카가 감방으로 가고 한나라당이 역사에서 사라지고 조중동이 패망하는 것 이상으로 이번 비키니 건과 같은 식으로 여성의 몸이 소비되지 않는 사회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나꼼수 비판하는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고요.